1. 서문
오늘은 중세 동북아시아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히는 "고려와 거란 2차 전쟁"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전쟁은 고려와 거란 제국 간의 두 번째 충돌로,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군사적 상황을 크게 좌우한 사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려와 거란 2차 전쟁의 배경, 전개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
1) 고려와 거란 2차 전쟁의 배경
고려와 거란은 993년에 발생한 1차 전쟁을 통해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고려는 송과 단교하고 거란에 조공을 바치며, 대신 압록강 동쪽까지의 영유권을 확보하였습니다. 그러나 1009년에 고려에서 강조의 난이 일어나 목종이 폐위되고 현종이 즉위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고려와 거란의 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이에는 거란이 송을 제압하고 "전연지맹(澶淵之盟)"을 체결한 사실, 그리고 거란과 고려 사이에 살던 일부 여진 부족과 고려의 갈등 등 국제 정세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고려와 거란은 다시 전쟁 상태로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2) 전개 과정
1009년에 현종이 즉위한 이후, 거란은 이를 계속해서 문제 삼았습니다. 고려는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해소하려고 했지만, 결국 1010년 11월에 거란은 황제가 직접 지휘하는 대대적인 군대를 동원하여 고려를 침입했습니다. 고려는 강조가 이끄는 군대로 맞서 싸웠지만, 대패하여 전선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현종은 신하들과 함께 개경을 탈출하고, 피난 도중에 하공진 등 주요 신하들과 만나 대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현종은 강화 협상을 위해 하공진을 거란 진영에 파견했습니다. 거란은 북방에 남아있는 고려군의 기습으로 피해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고려가 국왕의 친조를 제안하자 이를 수락하고 철군했습니다. 그러나 북방에 남아 유격 작전을 펼치던 양규 등은 계속해서 공세를 이어가며 거란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3) 전쟁의 결과
종전 이후, 고려는 국왕의 병환을 이유로 친조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거란은 1차 전쟁 당시에 고려의 영유권으로 인정했던 압록강 이동 지역인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이를 거부하였고, 이후 3차 전쟁까지 계속해서 분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3. 결론
정국은 목종이 폐위되고 현종이 즉위하여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강조의 패전으로 주력 부대가 붕괴되자 조정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현종은 수도를 버리고 피난을 떠나야 했는데, 여러 차례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로 험난한 여정을 겪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봉사에서 일행을 정리하고 하공진 등과 합류한 것은 이후의 강화 협상 및 종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고려와 거란 2차 전쟁은 동북아시아 역사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며, 이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변화와 국가 간의 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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